‘화를 참기 어렵다’
행동적 면역 시스템과 혐오
악수는 친밀감을 표시하는 인사 예절이다. 그런데 반갑게 악수를 한 상대방이 곧장 손을 자기 옷에 닦는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상대방이 싫다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면, 행동적 면역 시스템behavioral immune system이 작동되어 일어난 행동일 수도 있다. 보통 면역 시스템은 몸안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반응을 가리킨다. 그런데 행동적 면역 시스템도 함께 존재한다. 신선도가 떨어져 보이는 음식에 손이 가지 않는 회피 반응 같은 것 말이다.
생체에너지를 상당히 사용해야 하는 생물학적 면역 시스템에 비해 행동적 면역 시스템이 더 효율적이라는 긍정적 해석이 있다. 그런데 팬데믹 상황에서 일어나는 ‘아시안 혐오’ 같은 비정상적 분노 현상을 과도한 행동적 면역 반응으로 해석하는 주장도 나온다. 자신의 생물학적 생존에 위협을 줄 것 같은 부정적인 감정 자극에 ‘회피’라는 수동적 거리 두기 반응을 보이다, 더 강화되면 ‘배제’라는 적극적 거리 두기 현상이 일어날 수 있고, 심하면 ‘증오’라는 공격적 거리 두기에 이르게 된다는 설명이다.
요즘 타인에 대한 짜증, 분노를 호소하는 이가 늘어났다. 세상이 긴 시간 비정상적으로 작동되다 보니 우리 마음 안에 위기관리 시스템도 과열되고 있다. 중요한 정보와 필터로 걸러버릴 정보를 잘 나누지 못 하고 분노 같은 비상 사이렌을 지나치게 울리는 상황인 것이다. 분노, 혐오, 짜증 같은 내 마음의 감정 신호에 대해 한발 물러나 객관화해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한 시기다.
‘난 조용히 사직하겠어’
대전환Great Transition의 시기의 역설적 반작용,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란 신조어가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서 유행이란 이야기를 접했다. 송별회도 없이 조용하게 사직하는 것인가 했더니 아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본적 업무 이상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대전환 시기라 하는 지금은 조직과 개인에게 더 큰 도전과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만큼 개인의 마음이 지친, 번아웃 시기이기도 하다.
조직의 리더들이 호소하는 대표적인 고민은 ‘최선을 다해 소통하고 코치했는데 구성원에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스스로 무능력한 리더로 느껴지며 자존감도 떨어졌다’는 것이다. 과연 타인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노력만 하면 가능한 일일까? 마음에 여러 욕구가 있지만 강력한 두 개를 꼽아 보자면 친밀감과 자유이다. 좋은 관계를 갖고픈 욕구도 있지만, 동시에 자유에 대한 엄청난 욕구가 존재한다. 누군가 나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나의 자율성을 건드리는 자극이기에 저항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리더십이란 영역이 만만치 않다. 목표를 정하고 전략을 세우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이에 비해 실제 수행을 위해 구성원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키기에, 어찌 보면 리더십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구성원의 변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나치게 자신을 무능한 리더로 몰 필요는 없다. 과도한 자기비판은 리더십의 힘을 약화시키기 쉽다.
포스트 코로나, 디지털 전환, ESG 등 굵직한 이슈들이 변화를 주도해야 하는 리더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은 세상이 변화를 요구하지만, 개인과 조직은 기존의 틀에서 안락감을 찾으려는 경향을 이야기할 때 사용된다. 변화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기 위한 많은 조언과 기법이 존재한다. 많다는 것은 쉽지 않고 정답이 없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뉴노멀 시대에 다시 부각되는 회복탄력성,
그리고 마음의 재평가reappraisal 기법
전 세계인이 팬데믹, 경제적 불안정성, 그리고 정치적 양극화 현상 등 스트레스에 장시간 노출되면서 우울 증상 증가부터 비즈니스 결정 장애에 이르기까지 사회심리적 기능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게 인류가 동시에 고통을 당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마음의 맷집이라 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회복탄력성 관련 요인으론 ‘긍정적 평가 스타일Positive Appraisal Style’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현 상황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긍정 반응을 일으켜 회복탄력성을 증진시킨다. 87개국 2만 명 정도를 대상으로 진행된 최근 한 연구는 ‘긍정적 평가 스타일’을 강화하는 ‘재평가reappraisal’ 기법을 훈련한 경우 부정 반응은 줄고 긍정 반응이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재평가란 예컨대 ‘사람도 못 만나고 운이 나빠 이런 시기를 보낸다’는 부정적 평가를 ‘사회적 거리는 나와 내 사랑하는 이들을 바이러스로부터 지킬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다’라는 긍정적 시각으로 다시 평가하는 것이다. 미래의 변화에 집중하는 재평가 기법도 있다. 예를 들면 ‘이번 코로나 위기는 사회적 연결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누가 나에게 소중한지를 느끼게 해주었으며, 의료 시스템의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도 증가시켜 미래에 보다 진보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처럼 인지 재평가를 통한 관점 전환이 가능하다. 관점의 전환은 긍정 감정을 강화하여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회복탄력성이 증가해 몸과 마음에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바이러스 위기가 아닌 정치적 갈등에도 인지 재평가 기법이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다. 이스라엘 참여자에게 팔레스타인과의 갈등과 관련된 사진 등 분노 유발 콘텐츠를 보여주는 실험에서 감정적 대응이 아닌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로 재평가하도록 인지적 관점 변화를 연습했을 때, 분노 감정이 줄고 미사일 공격 같은 공격적 정책보다 평화적인 해결 정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인 ‘관점 전환’은 스트레스 관리는 물론 갈등 해결 등 리더십 영역에서도 효과적이란 이야기인데 일견 너무 쉬워 보인다. 그러나 상당한 동기를 가지고 노력해야 하는 면이 있어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과 적용이 필요하다.
긍정적 관점은 무조건 좋게 생각하자는 것과는 다르다. 내 생각과 감정 그리고 현실을 과학자처럼 하나의 데이터로써 냉정하게 바라보자는 것이다. 과도한 염려나 불안 또는 왜곡된 인지 프레임에서 한발 벗어나 정확한 현실 인식과 자기 인식을 하고, 그 안에서 ‘위기 후 성장’을 가능케 하는 내면의 용기와 긍정성을 이끌어 내는 과정이다.
나를 추앙compassion하라!
팬데믹 이후 다양한 영역에서 요구되는 ‘전환transformation’과 자녀 양육에 있어 ‘성장’의 심리 전개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마음은 평온한 전환과 성장을 원하지만 실제로는 영 그렇지 않다. 불안, 걱정, 우울, 좌절 등의 심리적 압박 지점pressure zone을 반드시 경험한다. 전환하고 성장하려 하기에 압박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압박의 시기에 적극적인 정서적 지원이 함께하면 전환 성공률이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서적 지원의 중요한 요소가 고통을 공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열린 질문과 능동적 경청과 같은 정신 치료적 접근이 리더십의 한 소통 기술로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타인보다 오히려 내 마음에 비판이나 과도한 압박으로 마음을 더 지치게 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나이 탓인지 옛날 같지 않다’란 말을 자주 듣는다. 아흔의 인생 선배부터 가끔은 20대 후반의 젊은 후배까지 이 말을 쓰는 연령 폭이 꽤나 넓다. 50대 후반인 분이 대화 중 끊임없이 옛날 같지 않다고 하기에, 그 말을 자주 쓰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지 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무의식적으로 그 말을 내뱉고 있었다는 것이다. ‘옛날 같지 않다’란 말을 자주 사용하면 ‘라떼는 말이야’처럼 매력도를 떨어트리는 소통일 수 있으니 줄이라고 권해드렸다.
문득 나는 어떤지 궁금해 후배들과의 저녁 모임에서 셀프 모니터링해보았다. ‘나이 들어 어떻다’라는 말을 꽤나 반복하고 있었다. 막아보려고 해도 툭툭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이 말을 하고픈 심리적 욕구가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젊고 강해 보이고 싶은 것이 본질적 욕구일 텐데 스스로 나이가 드니 한심해졌다고 셀프 디스를 하는 상황이다.
‘살 만큼 살았다’란 시어머니의 말에 ‘정말 멋있게 사셨어요’라 답한 며느리가 꾸중을 크게 들었다는 라디오 사연을 들었다. ‘살 만큼 살았다’란 표현은 ‘무슨 말씀을요, 이제 한창때이시죠’라는 답을 듣고 싶은 우회적 소통인 것이다. ‘옛날 같지 않다’란 말을 쓰는 마음엔 ‘아니다’란 답을 상대방에게 듣고 싶은 욕구가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혼자 있을 때도 주문처럼 ‘몇 년 전과 다르다’란 말이 나오는 것은 왜일까? 그런 말을 쓰는 연령대도 넓어지고 횟수도 잦아진 것은 왜일까?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 바이러스, 경제적 우울 등과 전투를 치르며 실제로 에너지가 격하게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힘을 내야 할 때인데 영 맥을 못 추는 자기가 한심하다는 호소를 자주 접한다. 몇 년 전 자신과 비교하면 옛날 같지 않다며 스스로를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미움이 아닌 자기 추앙’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기이다. 적절한 자기비판은 자기 인식에 근간이 되고 성숙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나를 주인공과 관객으로 분리해, 마치 나를 리얼리티 쇼의 출연자로 바라보며 핀잔을 주면서 잠시 현실에서 도피하게 만드는 자기 미움은 가뜩이나 지친 마음에 한 번 더 내상을 줄 수 있다.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은 ‘오늘’이다. 오늘이 수년 전보다 못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온 만큼 지쳤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내 마음에 옛날 같지 않다는 핀잔보단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날인 바로 오늘, ‘내가 너를 추앙한다’는 강력한 포옹이 필요하다.
나를 추앙하는 구체적인 실천은 나만의 ‘힐링 공책’
힐링도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
다양한 정서적 안정, 치유 방법을 가진 ‘힐링 부자富者’는 힐링 공책이 있는 경우라 생각한다. 공책은 실제로 있을 수도 있고 마음에 있을 수도 있다. 힐링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힐링에도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식과 연습도 필요하다. 내 마음이 무엇에 힐링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 마음이지만 보이지 않고 직접적인 소통도 어렵기 때문이다. 힐링의 시작은 내 마음과의 소통mindful communication이다. 마음이 좋아하는 활동들을 찾아 꾸준히 삶에 적용하는 것은 중요한 마음 소통법이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 공책에 나만의 힐링 목록들이 한 줄씩 늘어나게 된다.
연구로 입증된 힐링 공책 개발 관련 조언들을 소개한다. 힐링은 긴 여유 시간을 확보해 화려한 활동을 해야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을 업무 스트레스에서 잠시 떨어지게 하는 근무 시간 중 단 10분의 작은 휴식minor break도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로 지친 마음과 과도한 스트레스 호르몬이 흘러나온 생체 시스템을 원상태로 복원하는 것이다. 어떤 활동이 좋은지에 대한 답은 나에게 잘 맞는 활동이 최고이다. 동료나 부부가 같은 활동을 하거나 취미를 가지려다 낭패를 겪는 경우가 많다. 우정과 사랑과는 무관하게 힐링 활동에 대한 내 마음의 선호 경향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힐링 공책은 번아웃되기 전에 꾸준히 채우는 것이 좋다. 지칠수록 힐링 활동이 필요한데, 정작 지치면 하던 것도 귀찮아지는 ‘힐링의 역설’이 있기 때문이다. 번아웃 상황에서 새로운 힐링 활동을 개발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다. 미리 개발하고 번아웃 때는 적당한 것을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악기 연주 같은 취미 활동은 처음에는 어렵고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나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능동적 힐링 활동이다. 이에 비해 스트레스를 주는 것에서 멀어지는 것은 수동적 힐링이라고 한다. 둘 다 가치가 있다. 힐링 활동이 기록된 나만의 공책을 가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