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 수억 명을 대상으로 mRNA 백신의 효용성을 임상 실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전 세계인의 생명을 벼랑 끝까지 내몰았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역설적으로 인류의 난공불락 질병으로 인식되었던 췌장암, 폐암, 대장암, 흑색종 등 각종 암을 예방하는 암 백신 개발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2030년 현재, FDA는 암 예방을 위한 mRNA 백신들의 처방을 모두 승인해줬다. mRNA 백신을 종양세포에 주사하면 암세포를 유발하는 단백질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항원을 면역세포에 제시하여 면역 반응을 일으켜 준다고 한다. 이로써 인체의 보편적 수명이 100세 정도로 향상됐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혹자는 인체 수명이 매년 1년씩 증가한다는 농담도 한다. 현대인은 진시황이 꿈꾸었다던 불로장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일까?
매일 아침 디지털 휴먼을 통해
건강진단을 받는 세상
나는 매일 아침, 디지털 휴먼 ‘수아’의 속삭임으로 잠에서 깨어난다. 침대 끝에 올려진 폴더블 화면 위에 나타난 ‘수아’는 어제 하루 동안 기록한 생체 데이터와 간밤에 측정된 생리 변화를 종합해 나의 건강 지표들을 설명한다. 또한 아침 운동부터 오늘 일정 모두를 챙겨줄 뿐만 아니라 섭취하는 식단과 건강 상태까지 관리한다. 특히, 나는 유전자적으로 종양억제유전자인 MLH1, 세포손상이나 염증을 해독시켜주는 유전자인 GSTP, 그리고 암의 침입과 전이성을 증가시키는 유전자인 CDH1 등이 취약하다고 진단받았기 때문에 비록 유전자의 메틸화는 양호한 편이라 해도 건강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선 식생활과 운동 처방을 성실히 따라야 한다. ‘수아’는 내가 섭취하는 모든 음식물을 계량하고 웨어러블 센서들이 제공하는 생체 데이터를 추적 관리한다. 주치의가 처방해준 약물 복용은 물론이고 내가 등록해 둔 건강보조식품들도 일일이 간섭한다. 하루 종일 내 활동을 기록하고 분석하기 때문에 나의 건강 상태는 물론이고 심리 상태까지 파악하고 있다. 적어도 세 사람의 비서진이 나를 밀착 지원하는 역할을 해내는 셈이다.
‘수아’는 내가 구독하는 서울대학교병원 디지털헬스케어센터가 파견한 디지털 휴먼이다. 오늘은 서울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진찰을 받는 날이라 잠에서 깨자마자, 수아의 지시에 따라 혈액검사 샘플러로 시료를 채취하고 가정용 혈당검사기를 활용해 당화혈색소를 포함한 각종 혈당검사를 실시했었다. 검사 결과들은 자동으로 서울대학교병원 데이터센터에 등록이 된다. 담당 교수와 10시 15분에 온라인 상담이 예약되어 있으므로 교수님과 스마트폰을 이용해 진찰받을 예정이다. 교수님은 지난 4개월간 기록된 나의 건강분석자료와 가벼운 문진을 근거로 유의 사항들을 ‘수아’에게 지시하고 온라인 처방전을 발급해 줄 것이다.
AI는 진단 그리고 임상의는 처방의
역할 분담이 상식화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만 해도 의료 전문가들은 AI가 인간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재 AI 진단은 의료진의 상식을 뛰어넘는 높은 수준의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의료진들도 AI의 도움 없이는 효과적인 진찰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AI의 추론은 충분한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많은 사례가 보고되어 있고 임상적 효과도 뚜렷한 방법들을 제시하므로 의료진이 신뢰할 만하다. 특히 이미지 해석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디지털영상 데이터 속에 감춰진 돌출 데이터를 정확히 판별한다. 복잡한 임상 데이터나 조건들도 신속히 정리하여 최적의 진단이나 치료법을 가중치로 계산한다. 사실 과중한 치료 업무에 시달리는 임상의들이 새롭게 축적되는 의료 정보나 지식을 모두 섭렵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임상의가 갈고 닦은 전문 영역 밖의 의료 정보나 기술을 모두 이해하기도 힘들다. 따라서 임상의는 AI 분석 결과들을 적극적으로 참조하는 경향이다. 환자의 상태를 다양한 전문 분야의 식견을 감안해서 진단해 준다는 점에서 AI 판단은 임상의가 생각하기 힘든 다른 전문 영역의 상상력을 동원하는 협진 효과를 가져다준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 AI는 진단 그리고 의료진은 처방이라는 역할 분담을 고수하고 있다. 그 이유는 AI의 진단은 환자의 상태를 객관화해 추적하지 못하는 많은 현상들을 학습 과정에서 누락시키기 때문이다. 즉, AI가 학습한 데이터를 97~98% 신뢰한다고 해도 임상의가 대면한 환자의 상태가 나머지 2~3%의 예외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예외적 상황은 돌발적일 수 있지만 의료 사고를 줄이는 안전 조치 차원에서 의료진의 정밀 관찰과 암묵적 지식만이 최종 판단의 근거가 된다고 믿고 있다. 즉, 모든 환자치료의 처방과 책임은 의사에게 있으며 AI 진단은 협진 수단으로만 활용한다.
의대 교육의 핵심이 달라졌다
지난 2020년대는 의료 AI가 활짝 꽃폈던 시절이었다. 다양한 의료 영역에서 풍부한 의료 데이터를 근거로 AI 알고리즘들이 실용화되었다. 특히 의료 현장에서 AI 모델을 다루는 클라우드 컴퓨터가 거의 모두 엑사플롭스(exaflops)급 속도로 작동하므로 예전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고성능 추론 모델들이 단기간 내에 실용화 수준에 이르렀다. 더욱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컴퓨팅 기술의 발달 속도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의료진은 AI 지식을 다루는 능력을 더욱 키워야 한다’는 게 의과대학의 교육 목표가 됐다. 물론 그동안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의료 교육 시도가 있었다. AI 시대엔 의사들의 핵심 능력이 암기력이나 순발력이 아니라 판단력이 될 것이라고 해서 교수들의 연단 강의 방식을 줄이고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분석하고 토론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는 플립 교육 방식을 도입해서 운영해 왔다.
AI 의료 패키지는 플립 교육의 필수 교과서가 됐다. 학생들은 과제를 받으면 AI 패키지를 활용해 전문 의료 지식이나 사례 등을 충분히 분석해서 보고서를 작성한다. AI 패키지가 제공하는 다양한 해석 데이터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면서 기존 사례에서 도입했던 진단이나 치료 방식에 대한 비판력과 판단력을 키울 수 있다.
특히 AI의 진단 결과를 맹목적으로 믿지 않고 AI 패키지가 제공하는 판단의 허점을 파고드는 예리한 분석을 기반으로 환자의 치료 방법에 또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나 방법을 찾아내는 역량을 길러야만 한다. AI 시대에 의료 인력이 갖춰야 할 역량은 바로 AI를 다루고 AI와 토론하는 힘이다. 즉, AI가 제공하는 전문 지식을 활용하되 자신이 치료하는 환자가 AI가 제시하는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 독특하게 구분되는 특성이 있는지 예리하게 분별하고 이를 치료에 반영시키는 능력이다.
최근엔 로봇수술이 상식화됐고 인체 내 신경 수술까지도 로봇팔로 처리해 낸다. 해부학 실험에서도 카데바 대신에 생체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교한 e-카데바를 활용한 가상 수술 훈련이 의과대학 교과 과정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AI 로봇수술을 위한 다양한 치료 현장을 가상환경에 설정해 두고 원격 진료를 체험하거나 의료 장비를 취급하는 가상훈련 방식들을 의료 교육에 도입해 왔다. 모든 정교한 수술까지도 로봇에 의존하게 되었기 때문에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의라면 어떤 수술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AI 기술이 계속해서 수술 자동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의과대학에선 정밀로봇을 다루는 기술 교육이 중요해졌다.
의료 AI 기술의 혜택은 건강 수명 연장에 있다
이제 병원의 수익모델은 질병 치료보다 질병 예방에 더욱 치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건강 수명 연장에 있다. 국내외 많은 테크기업은 유명 병원들과 함께 디지털 건강관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질병 치료를 위한 환자가 줄어들면서 디지털 생체정보를 활용한 생애주기 건강관리 서비스 사업이 병원의 주 수입원이 되었다. 병원에선 개인별 유전체 분석 기술, 식생활과 장내 미생물 분포의 연관 해석 기술, 거주 환경에 따른 후성유전자 변이 등 만성질환의 원인이 될 인자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해주고 주기적인 정밀건강검진으로 맞춤형 질병예방대책을 세운다. 나 역시도 질병치료를 위한 의료보험 혜택과 별도로 질병예방관리를 위해 서울대학교병원 디지털헬스케어센터에 회원으로 가입해 디지털 휴먼에게 건강관리를 맡기고 있다.
디지털헬스케어센터는 유전자 정보, 정밀건강진단 데이터, 그리고 웨어러블 장비에서 수집한 생체 정보를 결합하여 개인 맞춤형 건강 수명 관리 서비스가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헬스케어센터의 관리 대상은 건강 수명이다. 건강 수명 이후의 잔존 수명은 관리 대상이 아니다. 현재 나의 건강 수명을 98세로 추정하고 있다. 90대까지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점만 해도 행복한 일이지만 나는 건강 수명을 105세로 높이기 위한 대책을 디지털헬스케어센터에 요구하고 있다. ‘수아’는 이미 나의 건강 수명 연장을 위한 관리 작업에 착수했다.